'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09.10 다시 배움의 길에 설 때
  2. 2015.05.22 10년후 계획하기
  3. 2014.11.16 꿈에 관하여
  4. 2014.03.15 고요한 공간에서 모두가 어떤가에 골몰하고 있을 때..
  5. 2013.03.28 방황하는 이십대
  6. 2013.01.12 캥거루가 되어버린 나
  7. 2009.04.10 그대는 대학생이다 2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슴을 아리게 하는 노랫말을 갖고 있는데,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중학교 때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진짜 서른즈음이 되니 매일매일

이 노래 가사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덜살에 학교에 입학해서 20년 가까이 학생 신분으로 살아오다보면, 배운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그러한 배움에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누락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배움의 목적이 나의 삶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성과나 타인들의 인정 및 경쟁을 위해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도망쳤으며, 그러한 배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진짜 알고 싶어했던 것들은 무었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얻게된 자격증으로 든든한 월급과 나름 안정된 생활을 얻었지만, 그 속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는 의문감만이 생길 뿐이다.


언제까지고 나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이 글은 나중에 흔들릴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다잡는 사명선언문이 될 것이며,

내가 서른이 되는 2016년의 나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정내가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롭게 거듭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10년후 계획하기

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 2015. 5. 22. 00:12 posted by 스노우경

틀에 박힌듯한 일상 속에서 그날 그날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를 어언 2년반, 내 삶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 나랑 비슷한 처지이지만, 나이가 10살이 많은 선배를 만났는데

그가 살아온 지난 10년을 짐작해 보니, 내가 앞으로 살아갈 10년에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상상이된다.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늘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새앙쥐마냥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나의 미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던 미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피어오른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모습을 구체화 시키고, 속도를 내야 할 때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내 삶이 멈추어 있다고 느꼈었던 때가 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야자와 

0교시 수업에 지쳐가던 고등학교 때가 그랬고, 대학 적응에 실패하고 낮과밤이 뒤바뀐 채

패배자처럼 숨어서 살던 때가 그랬고, 한창 좋을 나이에 땡볕아래에서 전투복을 입고 삽집을

할때가 그랬다. 지금도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인생의 깨달음과 성장은 이렇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2년 6개월이 나에게는 그런 셈이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백보다도 길었다. 직장에서는 날마다 새롭고 배우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성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퇴근후에는 새롭게 꾸리게 된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뒤로 미루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어떤 것을 결단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새앙쥐레이스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다른 것은 또 다시 미루고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지, 내 진짜 인생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제법 구체화되고 있는 중인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자유일 것이다. 남들이 부자라고 인정할 만큼의 자산을 형성하여, 실업이나 질병의

위협에서 안정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싶다.


하지만 또 고민 되는 것은 그렇게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나면 나의 이러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해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가령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교육을 해준다는 꿈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기 보다 지금 당장

교육 기부를 통해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교육기관의 설립이라는

꿈도 어쩌면 내가 진짜 원하는 이상이 아닐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난 돈이 필요한 것이가, 안정된 삶이 필요한 것인가, 사회에 기여하여 보람을 느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모르겠다.

꿈에 관하여

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 2014. 11. 16. 19:54 posted by 스노우경

'꿈'은 참 좋은 말이다. 내일의 희망을 말할 수 있고 오늘의 비루한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간절히 원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아니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자체로도 그것에 가까워 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설정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도 대입시켜 본다. 나도 꿈이 있다. 아주 많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꿈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 이살한 일이 생겼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나의 꿈을 말할 때

민망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나면 내가 갖고 있는 꿈을 이미 이루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앞에서 여태 그것을 꿈만 꾸고 있는 나의 모습이 민망스럽고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내 꿈을 유럽베낭 여행이라고 해보자. 실제로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와 비행기 표값과 현지 체류비 등을

계산하면서 내가 여행할 나라들의 목록과 여행 경로를 작성해 보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상상할수도 없을 만큼

큰 돈이 드는 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스무살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받고, 각종 해외 연수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면 그런 문제쯤은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20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고, 유럽여행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다. 근데 내게는 여전히 10년이 넘도록 꿈으로만 남이있는 그 일이 이미 성취한 현실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나보다 상황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더욱 많은 노력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안좋은 점이 늘어나지만, 이런 부분은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이룰 수 없는 망상을 안고 환상속에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실천을 해야 한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추진시켜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누굴 원망하기도 민망하고, 원망의 활시위를 돌릴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진짜 꿈꾸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내 꿈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다는 자각이 화살처럼 박힌다.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찾자. 그리고 다른건 잊자.

시험 전 도서관이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고요함 같은게 있다.

출근길 지하철이야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혹은 밤사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수면시간을 충당하기 위해서이든지 자기만의 시간에 빠진다.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상황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자신만의 과업에 몰두한다.


앞서 언급한 공간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집중을 해야 할 필요나 목적이 없을 때가 있다. 무언가 맹렬히 공부하는 사람들 틈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오늘은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토익 시험을 보는 사람들을 멀뚱히 쳐다보며 일당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이러한 상황이 되면 앞으로 나의 두시간은 매우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이 될것이라는 좌절감이 생김과 동시에 머리속으로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몸은 고요한 교실 안에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나 또한 시험에 집중하는 사람들 못지 않은 고양의 상태가 된다.


살다보면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현대의 삶 자체가 잘 짜여저 있어, 늘상 어떤 단계를 밟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월요일날 어떤 일을 해내면 화요일은 또 다른일이 기다리고 있고, 힘겹게 주중의 일과를 완수하고 나도 주말에는 나를 기다리는 다른 과업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과 같은 탈출을 꿈꾸지만, 이를 이루는 일 또한 쉽지는 않다.

오늘 두시간은 그래서 무언가 더 흥미로웠다. 아무것도 않하고 가만히 서 있으면서 집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시험문제를 푸는 사람들에 자극받아 나 또한 노력할 수 있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앞서의 생각들이 왜 이렇게 멀게만 생각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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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이십대

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 2013. 3. 28. 22:51 posted by 스노우경

대학 졸업을 두학기 앞두고 한동안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바로 해외 인턴십을 나갈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때 같이 스터디를 하고 있던 후배도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중이었기에 (그 후배는 현재 영국에 있다) 나도 덩달아 꾀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빨리 내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기를 바랬기 때문에, 휴학을 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결국 해외 인턴십에 대한 고민은 접게 된다.


 약 한달간은 나무늘보의 수면패턴대로 살아보고, 그 후 두달간은 3D업종에서 보수를 받았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첫 직장을 잡으니, 날아갈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하지만 마음속 뭔가 해결되지 않은 덩어리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당장 등따시고 배부르니 좋긴 하지만, 여기선 머물러서는 안될거 같다는 걱정 혹은 불안 같은 감정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를  선뜻 시작하기에도 애매한 이 기분.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다닐때 고민하던 나의 꿈이나 이상같은 것은 벌써부터 먼나라 이야기처럼 나와 이질감이 생긴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걸로 생각해도 무리는 없다. 


그러던 어느 출근긴 와중에 듣게된 CBS 세상을 바꾸는 15분_야채장사 이영석 편은 내 속에 뭔가 또다른 불을 지피게 된다. 예전 <일본전산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어떤 생경함이 이영석이라는 사람에게도 있다. 그건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다. 물처럼 사는 사람은 세상을 그저 유유자적하게 흐르며 살아간다.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가고, 높은 길이 있으면 다시 되돌아 간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분쟁도 싫고 일 벌리는 것은 더 싫다. 하지만 내가 그냥 시내물이라면 이영석이라는 사람은 바위를 부수는 격류같은 열정이 있다. '고작 야채장사주제에' 라고 비웃는 사람들을 오히려 안쓰럽게 쳐다볼 수 있는 그런 순수한 열정.


그 사람이 새로 쓴 책을 구입했다. 제목은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이다. 역시 강하다.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또 앞으로의 인생을 새롭게 다시 설계해보고 싶다. 


이렇게 살다가는 앞으로의 인생, 후회할거 같다는 생각이 물밀듯 들어오는 어느 저녁.   

캥거루가 되어버린 나

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 2013. 1. 12. 18:01 posted by 스노우경


[위크엔드] 젊은세대 일자리 기회 박탈, 프리터족·캥거루족 등 급증… ‘잃어버린 20년’ 도 탈출구 없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228000335&md=20121231003503_AN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한다. 지방에 있는 대학이었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다. 1학년 1학기 때 지하철을 이용해 통학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대학4년과 군대 2년간 부모님과는 같이 살지 않았으니, 내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긴 기간이었다.


그러다가 12월부터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다. 부모님은 20대 실업률과 어려운 경제 상황에 막내아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가고시를 준비했다가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아직은 앞이 조금 불투명한 상황.


낙관적인 기대를 갖고 있지만, 나이가 먹고 부모님과 같이 지내다 보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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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대학생이다

snow가 사는 모습/반성과 변화 2009. 4. 10. 01:54 posted by 스노우경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홍세화 /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