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를 보면 주인공의 방을 비추는 장면에서 익숙한 달력이 하나 나온다. 바로 한화그룹의 로고가 있는 점자달력이다. 이는 지난 2000년 부터 김승연 회장의 직접 지시로 전국의 시각장애인 및 기관들에 무료 배포하는 달력이다.
 
2009년부터 배포부수를 5만권으로 늘려서 현재 배포하고 있는 점자 달력은 시각장애인 기관 및 단체별로 한화그룹 홈페이지(www.hanwha.co.kr) 또는 한화사회봉사단 홈페이지(welfare.hanwha.co.kr)를 통해 신청 할 수 있다. 기간은 오는 20일까지.

 


출처: http://abnews.kr/PJ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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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중용 4강 칸트와 붕어빵

snow의 리뷰/강의&강연 2011. 10. 30. 23:30 posted by 스노우경
 

고전을 독서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고대와 현대의 철학을 아우르는 인간이 갖는 관심의 중심은 인간이다.

생활속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가 철학의 대상

프로이드라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가 인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는부분 까지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나의 문제에 대해 동서 고금의 사상가들을 통해 접근해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나라의 젊은 학자들은 높은 학문적 관심과 언어적 소양을 토대로 외국의 고전의 원본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책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럴 때 이러한 훌륭한 고전을 읽고 도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한국의 지식사회는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을 우숩게 알 수 없다. 각 출판사에서 좋은 책들을 낸다. 무엇이 되던지 간에 작가(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본질적인 관심, 인문학적 소양이 기반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노력을 하면 훌륭한 연주자는 될 수 있지만, 창조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강의를 듣다보면 나의 문제와 여러 가지 쟁점들이 궁금해 지고 고민이 생길 것이다.진정한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고전을 읽는 위대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지금 칸트 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붕어빵철학이다.

 붕어빵은 밀가루 반죽과 쇠틀이 있어야 한다.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붕어빵 틀을 형식이라고 부른다. 밀가루 반죽은 내용이다. 빵틀이 찍으니까 붕어빵이 되듯. 우리에게 있는 있는 인식의 오성의 범주가 작용한 것이 칸트철학이다. 나무를 보지 못한 사람은 나무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느낌이 없듯. 나무가 그 자체로 있어서 내게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라는 빵틀이 내 머릿속에 있어서 나무라는 오성의 범주에 들어오면 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빵틀은 나의 의한 경험이며, 밀가루는 주어지는 것이다. 칸트 철학은 구성론으로서 인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오성의 범주가 창조한 것이다. -칸트

우리의 구성이라는 것은 같은 환경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범주안에 있다. 그래서 개인이 창조하는 세계는 뻔한 한계에 있다. 오성의 범주는 인과관계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성의 범주가 구성해 놓은 세계는 인과론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감성론적이다.

 



칸트는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기 보다, 그것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는 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왜나면 이미 하나님은 나의 오성의 범주 바깥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성의 범주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실천이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중용은 칸트의 입장과는 다른 자사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자사는 칸트와 같은 인식론적 순수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초험적 자아가 있어 이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인간은 인식의 내용과 형식을 모두 천자와 교섭한다. 그리고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은 분열되지 않는다.

 

안철수교수의 박원순 지지 편지를 보면 앨리버마 흑인차별 철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주초기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백인에 비해 열등한 아니 동물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아왔다. 그러다가
남북전쟁이후로 흑인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법안이 인정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로부터 70년후의 이야기다.
즉, 서류상의 흑인차별철폐를 실제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나마 인정하는게 이정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민주화라는 개념이 들어온지는 6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위정자들의 기본적인 관점이 '사회'가 아니라 '몇몇 개인'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여러 장기와 부속품들로 이루어져 일사분란하게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유기체이듯, 사회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간과 제도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세계이다. 하나의 세포만 자기의 힘을 과신하고 주변의 다른 장기들을 억압하는 것을 생리학적으로 '암'이라 부른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도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암' 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타아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지면 사회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도 있지 않을까.

아래는 ebs 지식e내용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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