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엑스포 후기

snow의 리뷰/장소 2012. 6. 29. 01:47 posted by 스노우경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축복하는 계절. 그리고 그 대지위에 발 디디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가 되었던지 또 다른 즐거움을 여유로움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는 나날들. 여름이다. 그리고 나는 여름이 되어 어떤 의무(이를테면 시험 등)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 지면 잠깐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막연한 계획이라는 것에 확실한 목적지가 생긴것은 지난주.

  여자친구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목적지를 여수로 정했다. 나의 게으름과 혹은 무계획적 임기응변식 여행에 대한 어느정도 자신감의 결합으로, 여행일정 또한 목적지에 대한 선정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추상적이었다. 가령 이런식이다. '나는 27일(수) 엑스포를 관람할 것이다.' '출발하는 날은 26일(화)이며 돌아오는 날은 목요일이지만 돌아오는 차편은 버스로 할지 혹은 갈때와 마찬가지로 KTX로 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정하기도 정해 26일은 찾아왔고, 나는 여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박 삼일동안 재미있고, 기억해두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대해 혹은 또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할만한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이에 더불어 내가 자주는 아니지만 블로그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도착하자마자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출발하기 전의 게으름은 도착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이 성격을 규정하기도 어려운 글은 후기도 아니고, 감상도 아니고, 여행안내를 위한 글도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 있는 상념덩어리를 좀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부터는 여수엑스포에 대한 여수시민들의 반응, 엑스포의 의미, 그리고 여행 중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내가 갖고 있는 열차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내가 꼬맹이일 때 가족들과 설레는 맘으로 청량리발 증산행 열차에 몸을 싣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달리는 열차의 지붕위에서 숙명적인 대치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기차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펼쳐진 길을 달린다.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요소는 없다. 이미 수 없이 달린 길이고, 목적지와의 거리와 도달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개 일정하다. 그래서 오히려 위에서 언급한 악당과 주인공의 대결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어디로도 갈 데가 없으니까. 둘 중 하나는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명확한 배경이 된다. 나를 여수로 데려다 둔 KTX역시 애초에 나에대한 존재 여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열차는 지정된 시간에 천안아산역에 섰을 뿐이고, 또 지정된 시간에 여수역에 도착했다.

 

 어쩌면 여수시민들이 갖고 있는 엑스포에 대한 거부감은 이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이순신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항구도시에 대규모 국가사업이 결정된다. 시민들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것이다. 우리고장은 앞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제일의 도시가 되겠구나. 지금보다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겠구나. 뭐 이런 등등. 하지만 행사가 중반을 치닫는 동안 계획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자. 그동안 목소리를 좀 낮추고 있던 회의론자 혹은 실리주의 혹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누군가들은 행사와 그것을 주최한 측에 대한 비난의 말들을 쏟아낼것이다. 

 

  게장골목을 가기위해 탔던 택시 기사아저씨는 엑스포의 주최의 무계획성과 정부의 무성의함을 비판했다. 결국 그들만의 축제이며 서울에서 온 관람객이 아무리 불평한다 한들 여수시민들은 더욱 커다란 피해자일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내버스전면 무료라는 정책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을 택시기사님의 의견이긴 하지만, 내 생각에도 그것은 일리가 있었다. 이틀동안 약 여섯시간 넘게 여수시내 버스를 탔다. 항일암을 가기 위한 여정도 상당부분 포함되긴 하지만, 엑스포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과 상반되게 여수시내는 뚜렷한 혼잡스러움은 찾기 힘들었다. 물론 나의 시각이 매우 편협한것은 사실이겠지만, 어쨋든 내 시선에 의하면 여수시민들은 엑스포에 있었서 자신들은 객체이며 그런 위치에 대해서 불편하거나 혹은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첫째날 저녁에 오동도에서 바라본 엑스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래간만의 자유여행이기도 했고, 또 좋아하는 사람과 남해의 바닷가를 걷고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는지, 오동도에서의 엑스포는 조용하지만 그 존재자체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상징하는 고고한 성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330125933

금정연 글.


 박노자교수님은 2001년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9년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2012년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를 펴냈다. 서평가는 자신의 삶 속에 책 이야기를 녹여낸다. 스물둘, 스물아홉, 서른둘. 풋풋한 대학생은 점차 사회인이 되어 이 사회의 모순과 억압 따위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박노자 교수는 여전히 완고한 어조로 자신의 글을 묶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냥 도서관에서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묻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몇 번, 펼처보긴 했었다. 박노자라는 매우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스웨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책 날개에 쓰여진 작가 소개를 통해 알았다. 제 3의 인물로서 한국을 이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 한국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뭔가 걱정스러운듯하다. 애정이 섞인 걱정일테다. 

내 주변에는 박노자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내 삶에 어떤 무형의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박노자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듣고, 후기를 남겨야겠다.

이 글은 일종의 독서 다짐글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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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 별세

snow의 눈에 비친 세상 2012. 2. 25. 01:00 posted by 스노우경
24일 오후 강영우 박사(68)이 타계했다. 지난 11월 췌장암 판정을 받고
1개월여의 기한을 선고 받았는데, 그보다 더 긴 3개월을 지내고 운명하셨다.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전설처럼 알고 있던 인물이고, 교회에서 신앙간증을
할 때 멀리서나마 뵌 적이 있었던 분이다.
흔히 한국의 헬렌켈러로 언급되며, 14세에 시력을 잃은 후_ 간증 때 축구공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연세대,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 최초의 도미 유학자, 백악관 정책차관보, 유엔 세계 장애인 인권위원회 등.

그 시절 장애인을 위한 어떤 정책이나 지원도 없을 때, 오로지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서 이룬 성과나서 더욱 남다른 빛을 발하는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자녀들은 현재 미국에서 의사와 변호사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본인은 배우자와 한국에 자주 왕래를 하며 활발한 저술 활동과 강연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의 영화같은 생애 만큼이나 그가 주는 메세지 또한 큰 울림이 된다.
아래는 그의 강연 중 일부.

“섬기는 지도자란 곧 감동을 주는또 영감을 주는 지도자입니다.”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섬기는 지도자의 상은 3C를 갖춘 지도자로,

3C란 역량(competence), 성품(character), 헌신(commitment)을 뜻합니다.”

“섬기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남의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보는 것을 얻을 것이다(To see is to get)’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저는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비전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말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12년을 시작하며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자신의 생애를 묵묵히 돌아보는 마지막 편지라고 할까.


<빛은 내 가슴에>등 많은 저서가 있으며, 동명의 영화가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